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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쯔 (2008-08-19 01:08:47, Hit : 4977, Vote :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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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양파국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 표시에 "언니"라고 뜬다.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왠일이야?"

"잠도 안오공, 윤희만 보고 싶공"

'응응'거리는 콧소리 섞으며 동생에게 애교를 부리는 38살의 언니. 우리집 식구들은 원래 감정표현도 잘 못하고, 간지러운 소리도 잘 못하는 사람들인데, 유독 언니만은 그 '간지러운'소리를 잘한다. 어쨌든 잠 안오는 밤에 동생이 그리도 보고 싶다는 말이 듣기 싫지는 않다.

전화기 너머로 초딩 5학년, 3학년 조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재준이, 재호도 아직 안자?"

"이모가 사준 위인전 읽고 있어"

"뭐 읽는데?"

"재준이는 '홍난파', 재호는 '방정환'"

"아니 그 어린것들도 아직 안잔단 말야?"

"방학이니까 괜찮아."

"요즘 초딩들은 방학때 하루일과가 어때?"

"일어나자마자 컴퓨터에 앉아서..... 어떨때는 나 출근하기 전까지 일어나지 않을때도 있고..."

"그럼 언니 출근하면 밥은 자기들이 알아서 챙겨먹어?"

"그냥 해논 밥에 냉장고에서 반찬꺼내서 차려먹던가. 재준이는 라면도 끓일줄 알고, 계란후라이도 해먹고 그래"

첫조카 재준이. 초딩 5학년.

그녀석이 벌써 라면도 끓이고, 계란후라이도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내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나는 언제부터 라면을 끓일줄 알았을까. 기억에 없다. 단, 내가 가장 처음 국을 끓여본 날이 기억이 난다. 내 초딩 5학년 엄마 생일날.

"언니, 기억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첨으로 '국' 끓였던 날 생각나?"

"양파국?"

"ㅋㅋㅋ. 언니도 기억하네?"

"계란도 하나 풀었지?"

"고춧가루도 넣었어."

"간은 간장으로 했던가?"

"그건 기억 안나네. ㅋㅋㅋ"

엄마 생일을 맞아 엄마를 부엌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며, 언니와 함께 저녁식탁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보자고 둘이서 부엌에서 뚝딱 뚝딱 거렸던 생각이 난다.
뭘 만들어야 할지도 몰라서 냉장고 열어 대충 아무거나 이것저것 넣고 준비했던 식탁. 아마 다른 것은 모두 엄마가 만들어 놓으신 밑반찬을 꺼내놓았던것 같고, 우리 둘이서 만들었던 것은 그저 '국'하나였던 기억. 그것도 엄마가 한번도 만들어 주신적도 없는 정체불명의 '양파국'.

그 오래전 기억을 언니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다는게 놀랍다.
근데... 엄마는 기억하고 있을까?
내일은 엄마한테 전화해서 한번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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