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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zz (2004-06-09 04:29:14, Hit : 4031, Vote : 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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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11] 공포의 유스호스텔 - 빅토리아


'빅토리아'는 애시당초 내 여행 계획에는 없는 도시 였다.

그런데 왜 갔냐고?

...

This is Traveling.


가려고 맘 먹었던 곳을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하고, 전혀 계획에도 없던 곳을 어쩌다 가게도 되고, 하루, 이틀만 있어야지 했던 곳에서 일주일을 머물고, 일주일만 있어야지 했는데, 한 달이 지나버리고.......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그런게 여행이라 하였다.
1년 2개월 동안 19개국을 여행하면서 나 또한 숱하게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되었는데, 이 캐나다의 '빅토리아'가 바로 그 '전혀 계획에도 없었는 데 어쩌다 가게된'의 첫 케이스로 '*미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가려고 맘 먹었으나 그냥 지나쳐 버린' 그 비운의 첫 도시는 록키에서 밴쿠버로 오면서 이미 그냥 지나쳐 버린 '캘거리'였고...

밴쿠버에서 빅토리아로 가는 배 안에서 나는 두 명의 남자를 만났다. 한명은 20대 초반의 한국 대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밴쿠버의 모 대학원을 다닌다는 나랑 동갑내기 중국인 유학생이었는데, 둘 다 방학을 맞아 빅토리아로 여행을 가고 있는 중이라 했다. 어쩌다 통성명을 하게된 우리 셋은 빅토리아에 도착하기 전까지 배의 갑판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근데, 중국 남자들이 원래 그러는지, 아님 이 중국인 유학생만 유독 그런건지.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나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남자를 '전세계'를 통틀어 첨 봤다.

"여기서 하나 찍어줘" "여기서 하나 더 찍어죠" "잠깐만 여기서는 내가 잠바를 벗고 찍을게. 자 이제 됐어. 찍어죠."

찍히는 모습 하나 하나의 패션까지 신경 써가며 사진을 찍어달라는 중국인 유학생. 그의 이름은 에디였다.

빅토리아에 도착하였다. 나와 한국 남자애는 서로 다른 숙소를 미리 예약해 두었었고, 에디는 아직 예약을 하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에디말로는 자기가 가려고 생각했던 숙소가 바로 내가 예약한 그 숙소라면서 나를 따라올 테세다. 뭐. 내가 그 숙소 전체를 전세낸 것도 아니니, 따라오던 말던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기도 했지만, 이미 배 안에서 사진 찍는답시고 세 명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쫌' 친해지기 시작한 터라, 오히려 다른 숙소를 예약한 한국남자애가 우리를 따라 오지 못하는 것을 더 아쉬워하는 판이었으니, 뭐 일단 분위기는 그렇게 정리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남자애와는 선착장에서 빨빠이를 하고, 에디와 나는 지도를 보며 내가 밴쿠버에서 미리 전화로 예약해 놓은 유스호스텔로 찾아갔다. 나는 리셉션니스트에게 내 예약상황을 얘기하고 도미토리 방과 침대번호를 배정받았다. 뒤에 서 있던 에디도 이제 방을 정하고 체크인을 해야 할 판인데.. 에디가 리셉션니스트에게 얘기한다.

"얘랑 같은 방으로 주세요."

켁! 이게 뭔 소리래? 내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걸 알았는지. 에디가 서둘러 나에게 묻는다.

"어.어.. 너랑 같은 방 써도 되니? 괜찮니?"

잠깐, 잠깐... 나는 지금의 이 사태를 빨리 파악해야 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리셉션니스트가 먼저 선수를 치고 설명한다.

"우리는 물론 남녀 공동 도미토리도 있습니다. 지금 여자분은 여성전용룸에 배정이 되셨는데, 두분이 같은 도미토리 룸을 사용하시겠다면, 여자분께서 남녀 공동 도미토리 룸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그러시겠어요?"

아.아... 그런 거구나. 나는 몰랐다. 도미토리 룸이라는 것이 당연히 남자, 여자 따로 분리되어 있는 방만 있는 걸로 알았다. 근데, 같이 사용하는 방도 있단 얘기구나. 그런게 외국에선 일반적인 모양이지? 그러게 여행을 할 때는 항상 그 나라의 문화 상황을 잘 알고 있어야 당황하지 않는다니깐. 하긴 도미토리라는게 그냥 큰방 하나에 2층 침대가 여러개가 있어서 침대 하나씩 배정받고 자기 침대만 쓰는 거니까. 여기서 내가 NO라고 하면, 굉장히 촌스러운 사람 되는거겠지? 그냥 나도 너희들처럼 방이 여자 전용이건 남녀 혼용이건 그런 것 쯤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그러덩가. 말덩가. 그러지 뭐.' 하는 표정으로 나가야 얘네가 나를 촌스럽게 보지 않을거야. '나는 뭐 그런거 몰랐는 줄 알아? 왜 이래! 이거. 나도 그런데서 많이 자봤어, 내가 뭐 여행을 하루 이틀 한 사람인 줄 알아?' 하는 표정으로 말이지. 여자는 꼭 여자것만, 남자는 꼭 남자것만. 뭐 이렇게 꼭 나누는 거. 나두 별루야. 여자건 남자건, 우린 다 똑같은 '여.행.자.'니까. 그치? 하. 하. 하.

"OK!"

나는 얼른 당황한 표정을 수습하고 짧고 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바뀐 방 번호를 찾아 앞장서서 걸었고, 에디가 뒤따라 왔다. 방은 6인실로 2층 침대가 3개가 있었는데, 방이 생각보다는 작은 편이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몇 개의 침대는 이미 주인이 있는 듯 침대 밑에 몇 개의 가방이 놓여 있었다. 리셉션에서야 쿨한척 하느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지만, 실상 나는 대충 배낭만 어디 잘 묶어놓고, 이 방을 한시라도 빨리 빠져 나가고 싶었다.

"에디야. 밥먹으러 가자!"
"어. 난 배 안고픈데, 그럼 넌 밥 먹고 와. 난 여기서 뭘 좀 정리할 것도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같이 구경 다니자. 그럼 1시간 후에 유스호스텔 앞에서 다시 만날까?"
"어. 그래? 그러지 머." (나의 '그러지 머'는 'OK'를 약간 이상한 억양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

근처 카페테리아에서 피자조각과 콜라가 같이 나오는 셋트 메뉴로 간단히 요기를 한 나는 유스호스텔 앞에서 다시 에디를 만나 이곳 저곳 빅토리아 탐험을 시작했다. 에디는 역시나 이번에도 많은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 남자를 위해 이렇게 많은 독사진을 찍어준 적은 정말 처음이었으며,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

섬이어서 그랬을까. 올만에 바다의 짠내음을 맡으니 나는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빅토리아는 내 고향 제주와 구석 구석 어딘가 많이 닮아 있었다. 캐네디언들이 은퇴후 나머지 생애를 보내고 싶은 곳 1위로 뽑는 곳이 빅토리아라니 이런 내 생각이 그리 황당한 것은 또 아니리라. 내가 왜 이곳을 안들리려 했을까. 아찔한 실수를 저지를 뻔하였던 내 자신의 뒤늦은 선택이 새삼 고마워졌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저녁이 되어 우리는 배가 고파져 왔다. 혼자 다닐 땐 수퍼에서 빵이랑 몇가지 재료들을 사서 즉석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거나, 햄버거로 대충 끼니를 떼웠었는데, 그래도 이번엔 일행이 있으니, 이럴 때 한번쯤은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식사다운 식사를 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된 두 구의 시체같은 몸을 이끌고 힘들게 발견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메뉴판을 살펴본 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테이크 어쩌고' 하는 같은 메뉴를 시켰는데, 웨이트리스가 그 메뉴는 재료가 1인분 밖에 없어서, 한 명은 다른 걸 시키라고 했다. 에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뿐시키. 나는 메뉴를 바꿨다. 이런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어 본적은 거의 없었으므로 뭐가 뭔진 잘 몰라서, 그냥 '스테이크 어쩌고'와 가격대가 비슷한 '치킨 어쩌고'를 시켰는데...

젠장! 양보는 할 때가 있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에디의 고기로 가득찬 화려한 접시를 보는 순간 너무도 순진했던 나의 양보에 대한 후회가 배고픔과 같은 속도로 밀려오기 시작했고... 칼로 쓱쓱 썰어서 맛나게 고기를 먹고 있는 에디. 내 접시에는 그 가장자리로 튀긴 감자 몇조각과 이상한 풀들이 장식인지 음식인지도 모르게 동그랗게 놓여 있었고, 장조림을 잘게 찢어 놓은 듯한 크기의 치킨 몇 조각이 가끔(--;) 떠 있는 스프가 조그만 숭늉그릇 같은데 담아져서 접시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 음식의 모양새만을 한참을 바라보다, 스푼으로 고기도 잘 건져지지 않는 멀건 국물을 떠먹으며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기 시작하고 있는데, 에디의 젠장 맞은 고기 씹는 소리가 너무나도 귀에 거슬렸다. 나뿐시키. 누가 양보해서 먹는 건데, 한조각 먹어보란 소리도 안하냐... 나뿐시키. 나도 고기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T.T

차라리 햄버거를 먹자고 할걸... 하는 후회를 하며, 나는 여전히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로, 에디는 고기로 꽉 채운 배를 쓰다듬으며 얄밉게도 연방 "I'm really full!" 하며, 그렇게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나뿐시키. 나뿐시키. 매너도 하나도 없는 진짜 나뿐시키. 이제 어두워져 깜깜해진 빅토리아의 밤은 또 그만의 화려한 야경으로 나의 허기진 배를 그나마 위로해 주었다. 저 별은 내고기. 저 별도 내고기. T.T





숙소로 돌아왔다. 부실한 저녁식사 탓에 힘없이 방문을 열고 도미토리 방으로 들어섰는데...

크헉! 엄마야!

방문을 열고 들어선 내 앞에는 팬티만 입고 있는 파란 눈의 한 서양 남자가 나만큼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아, 그렇지 여기는 남녀 공동 도미토리지. 침착하자. 침착하자. 촌스럽지 않게. 촌스럽지 않게. 근데, 이 서양남정네도 나만큼 촌스러운 넘인가? 나만큼 당황하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혼자 쓰는 방도 아닌데, 왠만하면 바지는 좀 입지... 그러고 나서 방안을 한번 휘둘러보니...

크허어어어어어어어~억!

내 침대 빼고 나머지 침대 5개가 모두 남자다! 뭐야 뭐야? 이런! 이게 무슨 남녀 공동이야. 완전 남자 전용 룸이지!!! 이노므 원망스런 에디녀석은 벌써 갈아입을 옷을 챙겨 유유히 샤워실로 들어가 버린 상태였고... 나는 샤워고 머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디 이렇게 팬티만 입고 돌아댕기는 남자가 5명이나 있는 좁은 방에서 잠시라도 젖은 머리를 하고 있을 수가 있겠냔 말이다! 나는 씻을 엄두도 내지 못함은 물론이요, 하루종일 땀에 절어 찐득해진 옷조차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가 머리카락 하나도 밖으로 보이지 않게 그 더운 여름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다. 태양아 빨리 뜨려므나. 제발 빨리 밝아와라. 아침이 오는 척이라도 하면 그대로 이 방을 박차고 나가 버리리라! 좀 촌스러우면 어때! 이렇게 겁나는 공포의 밤을 보낼 바에야 차라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촌년이 되겠다! 젠장할!

그렇게 내 생애 결코 잊을 수 없는 '다섯 남자들과의 동침의 밤'이 저 캐나다 서쪽 끝자락 빅토리아에서 아슬하게 깊어갔다. 꼬르륵~ T.T


덧붙임)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인데, 나를 보고 놀라하던 서양 남자애의 눈빛은 '당황'이 아니라, '황당'이었던 걸로 추측된다. 여자애가 여자방에 침대도 많이 남는데, 왜 굳이 이 방에 왔을까... 하는 눈 말이다. --; 이미 다 분위기 파악 했을거라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노파심에 덧붙인다. 여성전용방 받는다고 절대 촌스럽고 어쩌고 없다.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라. 나라마다 문화야 다르지만, 도미토리같은 공용숙소를 사용함에 있어 모르는 사람들과 한방을 쓸 경우 그 대상이 '동성'인 경우가 편한 것은 어느 나라애들이라도 다 비슷한 것이다. 물론 당신이 네,다섯명쯤 되는 남자들과의 동침의 스릴 같은 것을 오히려 즐기는 취향이라면, 거야 알아서들 하시고.


............................................
* 필자주
- 미쯔 기네스북 : 미쯔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최대, 최고, 최초 어쩌고에 해당하는 사건,사고를 기록한 미공개 문헌. 실제로 존재하는 문헌인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 여행기가 끝날 때 쯤 부록으로 일부가 공개될 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음.



jiwonmom
빅토리아를 그냥 지나칠라고 했다공 큰후회 할뻔했네 캘거리보다는 몇배 나을걸....아마도
너의 여행기를 읽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나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르지만 우리 지원이를 두고 어딜 가겠냐
지원이 크면 같이 다녀야 겠당....
ㅋㅋㅋㅋ...악몽의 밤이였겠당 잠은 잘잤냐
핸폰생겼으면 연락좀 해라
 2004/06/09   

mizz
어디 잘 자겠냐. 무섭고 배고프고. --;  200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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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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