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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zz (2004-07-09 05:53:29, Hit : 4420, Vote : 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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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14] 딸아. 여행을 왜 그렇게 하려는 거니? - 토론토 ⑤


친구 H도 한국으로 돌아갔고, 내 6개월짜리 캐나다 학생비자의 유효기간은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사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캐나다에서 몇 개월 어쩌고'라는 시간적 의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무작정 한국을 벗어나 어디든 좀 가보고자 했다. 그러자니 필요했던게 영어였으며, 그래서 결정한 내 여행의 첫 번째 나라 캐나다에서 영어공부 먼저 좀 해보겠다 하니, 또 필요했던게 학생비자였다. 이를 위해 3개월간의 사설 어학원을 한국에서부터 미리 등록해 놓았더니, 캐나다 입국심사대는 무슨 식료품 공장에서 식료품 겉포장에 유통기한 찍어 내듯, 내 여권 한페이지에 6개월간 캐나다에 체류해도 좋다는 도장을 '꽝'하고 찍어 줬던 것이다. 한달만 있어도 상관없고, 석달 쯤 있다가 다른 나라로 떠나도 상관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5개월 반이 지나버렸고, 이제 나에게는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으려면 비자를 연장하든지 캐나다를 떠나든지 둘중에 하나로 하루빨리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만큼 그리 향상되지 않은 영어에 대한 미련도 있었고, 수강하고 있던 일러스트레이션 과정도 수료하려면 한달 반 이상이나 남아 있었다. 값싸고 신선한 브로클리와 샐러리를 사기 위해 장보러 다니던 켄싱턴 마켓에서 이제 막 스위스 에멘탈 치즈를 파는 치즈가게와 그날의 남은 빵을 한봉지에 묶어서 싸게 파는 베이커리를 추가로 발견한게 얼마 되지도 않았다. 내 입맛에 딱 맞아 떨어졌던 커피체인점 팀홀튼의 달짝지근한 프렌치 바닐라 커피도 캐나다를 뜨면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터였다. 그것들은 앞세운 캐나다의 또 한번의 유혹은 이처럼 그리 뿌리치기 쉬운게 아니었다. 그러나 캐나다가 그렇게 나를 잡아 끌고 있는 힘보다 더 강력한 어떠한 힘이 그 반대편에서 나에게 다시 떠나라 하였다. 사실 오래 머물렀다. 한국에서 그렇게도 지쳐버렸었던 내 몸과 마음을 캐나다는 내가 원했던 것만큼, 딱 그만큼 잘 치유해 주었다. 여기선 충분하지 않느냐 한다. 정말 잘 치유가 되었는지 어떤지 이제부턴 본격적인 날개짓을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 한다. 내 마음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하나 하나 캐나다 생활을 정리해 나갔다. 사실은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캐나다로 올때부터 내가 가지고 온 것이라곤 중간크기의 슈트케이스 하나와 45리터짜리 여행배낭 하나 분량의 짐 뿐이었고, 캐나다에 머물던 6개월동안 그양의 변화가 거의 없을 만큼 나는 참으로 간단하고도 단촐하게 살았다. 그나마도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나눠 줬더니,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하면서 모아둔 자료만 빼면 오히려 짐은 처음 캐나다로 올 때 보다 더 줄어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모두 들고 세계 이곳 저곳을 다닐수는 없기에 다시 여행을 떠날 때 필요한 것들만 배낭에 따로 챙기고, 나머지는 가족들의 선물과 함께 배편으로 한국으로 보낼 준비를 했다.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했다. 한국을 떠날 때 나는 부모님께 "엄마, 아빠, 저 혼자 세계 배낭여행좀 하고 올께요. 어디로 갈지,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겠어요" 하고 말씀 드릴 수는 없었기에, "아빠, 엄마, 저 캐나다에 가서 영어 공부좀 하고 올께요. 어학연수 아시죠? 남들도 많이 하잖아요." 하고 떠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캐나다를 떠나게 되었으니, 더불어 부모님께 무릎꿇고 이실직고 할 시간도 같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잖아도 저음이신 엄마는 감기까지 걸리셔서 전화기 너머로 그 퀭하니 쉰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안타깝게 끊어지다 이어지다 하며 "언제 올꺼니?"하고 물어 오신다. 내 심장 한켠이 날카로운 무엇엔가 긁혀 미세한 구멍들이 생긴 것 같았다. 내가 들이 킨 숨들이 그 구멍들을 통해 뜨겁고도 싸하게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으로 가슴이 아파왔다. 그래도 할말은 해야 했다.

"엄마, 영어 공부는 끝났는데요. 여행을 좀더 할까 해요."
"또? ........ 어디로 갈껀데?"
"유럽에 친구들이 있는데... 놀러 오래요. 하나도 위험하지 않아요. 그냥 친구들 보러 가는 거예요. 친구들 집에만 있을 거예요. 영국에도 친구가 있구요. 스위스에도 친구가 있어요."

유럽으로 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가 가려는 모든 나라에 친구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유럽으로 내 여행이 끝나지는 않을 터였다. 유럽이 끝나면, 터키도, 이집트도, 인도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오지같은 나라들까지 혼자 여행할 꺼라는 말은 차마 꺼낼수가 없었다.

"한국엔.. 가족이 있잖아..... 내 딸아. 여행을 왜 그렇게 하려는 거니? 그냥 한국으로 와서 엄마랑 같이 살면 안돼?"

심장에 난 미세한 구멍들의 통증이 끝내 견디지 못하고 내 눈에서 눈물을 쏟아내게 하고 있었다.

'엄마... 여행을 왜 하려고 하냐면요... 글쎄요. 제가 왜 여행을 하려고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무엇이 이렇게 자꾸 나를 떠나게 만드는 걸까요... 저도 이렇게 엄마가 보고 싶고, 아빠가 보고 싶고,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운데요....' 라는 말이 나오려다가 목구멍에 걸려 소리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 나는 왜 이렇게 떠나려고 하는 걸까.... 엄마의 말씀을 듣고 나니, 이젠 나조차 헷갈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 한국을 떠나왔을땐 그 순간이 내게 '행복하지 않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것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만으로 스케쥴링 되었던 나의 일상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내 삶의 이유를 의미없이 만들어 버렸으므로, 그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무작정 떠나왔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은 뭘까.....

울먹이고 있다는 것을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몇초의 시간동안 마음을 진정시킨후, 나는 다시 차분히 나의 엄마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번이 아니면, 다시 이런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기왕 밖으로 나왔을 때, 제가 보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보고, 그리고 정말 아무런 후회도 없을 때, 그때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는 한숨을 쉬셨지만, 더 이상 딸의 고집을 꺾으려고는 하지 않으셨다. "빨리 끝내고 돌아오너라. 조심해야 한다."라고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자신의 딸을 걱정하셨지만, 나는 독한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시는 엄마가 더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빨리 돌아가지는 못할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러겠다'고 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못된 딸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2002년 10월의 마지막 날.
일기예보에서 토론토에 첫눈이 내린다고 했던 날.
일기예보를 배반한 토론토의 파란 하늘이 격려라도 하듯 눈대신 뿌려주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나는 영국 맨체스터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유럽으로 간다.





세희
언니 안뇽!  200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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